꽃보다 집회 / 대한문 앞

2013년 6월 221호
사람사랑

|순 서|
사랑방 사람들 와글와글
활동가 편지
  ∥ 사랑방 자희가 여러분께 보내는 편지 _자희 (자원활동가)
  ∥ 내가 콜트기타를 치지 않는 이유 _훈창 (상임활동가)

밥은 먹었소
  ∥ 분리·독립 후 치러진 18회 서울인권영화제를 축하하며 함께 해 외

후원인과의 인터뷰
  ∥ nunc 님_ 지금 여기에서, 인권감수성의 의미를 다시 고민하고 있어요

활동 이야기
  ∥ 매주 월요일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_훈창
  ∥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인권운동사랑방 역사와 전망을 나누다! _최은아
  ∥ 삶의 장소에 대한 권리 _미류
  ∥ “경찰을 집회 방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하겠습니다!” _정록
  ∥ 장수마을에서 앞으로 일구어낼 변화를 기대하고 응원하며 _민선
  ∥ 청소노동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권리를 위해 함께 해요 _명숙

사랑방의 한 달
  ∥ 인권운동사랑방의 20년을 돌아보는 워크숍 진행했어요 외

살림살이
  ∥ 들어온 돈 나간 돈(2013년 5월 1일 ~ 2013년 5월 31일)
  ∥ 5월의 고마운 후원금

아그대다그대
  ∥ 내 인생의 갑을

<표지설명>
5월​ 29일 대한문에서 열린, 집회시위 자유를 위한 '꽃보다 집회' 참여자에게 최루액을 난사하고 있는 경찰들
자원활동가 편지
사랑방 자희가 여러분께 보내는 편지

자희 (자원활동가)
안녕하세요. 제 이름이 낯선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일단 간단히 제 소개를 드리자면 저는 중고통합형 대안학교인 ‘느티울 행복한학교’에 재학 중이고, 학교 과정 중에 있는 장기 인턴십으로 5~6월 두 달간 인권운동사랑방으로 인턴활동을 나온 백자희 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제가 자원활동가의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얼마 전에 민선이 전화로 써 볼 생각 없느냐 고 물었는데 괜히 혼자 너무 긴장됐어요. 5월 1일부터 한 달간 매일매일 나왔는데 막상 생각해보면 한 일도 없고 다른 자원활동가 분들에 비해서 아는 것도 없고,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하나 고민 많이 했는데 그냥 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해요.

제가 원래 ‘인권’ 이라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워낙에 학교에서 촛불집회, 쌍용차 분향소, 인권천릿길, 인권영화제 등등 인권에 관련된 활동들을 많이 해 와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막연하지만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컸고, ‘나는 인턴을 할 때 꼭 인권단체를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 이곳을 추천해주셔서 오게 되었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가족 같고 편안한 분위기여서 놀랐고 좋기도 했어요.

처음 인턴을 시작할 때에 활동가분들이 저에게 무슨 활동을 주로 하고 싶냐 물었을 때 저는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무조건 밖에 나가서 하는 집회나 이것저것들을 참여하고 싶다’고 했었어요. 사실 집회나 시위현장에 많이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부모님이 저를 위험한 집회에 잘 참여시키지 않으려고 하셨거든요. 어쨌든 간에 그렇게 해서 저는 훈창이 하는 차별금지법과 명숙이 하는 청소노동자행진을 주로 같이 하게 되었어요.

차별금지법 관련해서는 매일 언론 모니터링도 하고 회의도 참여했어요. 저는 차별을 당연히 금지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답답하고 더 알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서 나름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있고요.

청소노동자에 관련해서는 인권영화제 때 하루 동안 청소노동자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스를 설치하기도 했고요. 6월 14일에 있을 청소노동자 행진을 위해서 여러 가지 준비들을 하고 있답니다. 사랑방 활동가분들이 추천해주셔서 여러 글들도 많이 읽어봤는데 저와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인권에 대해 관심이 많은 척 하면서도 사실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후회되기도 하고 아직은 계속 더 관심을 가지고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외에도 다른 사랑방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집회에 저도 많이 참여하기도 했는데요. 말로만 듣던 그 상황들이 제 눈앞에 직접 벌어지니 무서웠어요.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경찰들이 와서 막고, 치열하게 몸으로 싸우고 최루액을 뿌리고, 사람들을 연행해가는 모습을 보니 저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냥 그 상황들이 안타까웠어요. 국민들을 지켜준다는 경찰이 어떻게 해서 국민과 대치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고요. 여러 집회를 참여하면서 그런 비슷한 상황들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쭉 생각해봐야 할 것 같고요.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저도 한 달간 은근 해온 일이 많네요. ㅎㅎ 이제 인턴 활동을 한지 막 반절이 지났고 앞으로도 반이 남았는데, 한 달 동안은 적응 기간이었다면 남은 한 달 동안은 더 활동에 열심히,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닫고 가겠습니다. 제 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하고 행복하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상임활동가 편지
내가 콜트기타를 치지 않는 이유

훈창 (상임활동가)

안녕하세요. 상임활동가 훈창입니다^^ 참 오랜만에 상임활동가 편지로 연대와 평화의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봄이 지나가고 벌써 30도를 넘나드는 여름, 다들 잘 지내시나요??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는 오늘 모두들 건강 항상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6년여 간의 시간동안 싸워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후원인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기타노동자들이 기타도 만들지 못한 채 거리에서 싸워온 이야기,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라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기타라는 악기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라디오 PD와 DJ를 오랫동안 해온 가족의 영향이 가장 컸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들려오는 LP 속 노래들은 익숙하다 못해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밴드음악들을 접하게 되며 음악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너바나, 섹스피스톨즈, 랜시드, 노브레인의 음악을 들으며 펑크키드가 되었고 에릭클랩튼, 로버트 존슨, 지미핸드릭스와 비비킹은 블루스 음악에 빠지게 했습니다. 마이클잭슨이 죽은 날 하루 종일 침묵에 빠졌고, 최근 데프트 펑크가 신보를 내었다는 소식에 중학교 때 3만원에 산 해적판 데프트 펑크의 앨범이 떠올랐습니다.

기타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집에 있는 통기타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조금 돈을 모아 전자기타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산 기타가 콜트기타였습니다. 네! 공장에서 내쫓기고 박영호 자본에 맞서 농성을 시작한 지 2313일이 지난 노동자들이 만들었던 기타였습니다.

그 기타를 어떻게 잃어버렸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 기타가 제가 산 마지막 콜트 기타였습니다. 콜트기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되었단 소식이 들린 이후 제가 기타를 살 때 콜트기타는 사지 않거나 추천해주지 않는 기타가 되었습니다.

기타는 단순한 하나의 상품이 아닌 노동자이자 장인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그래서 피와 땀으로 범벅된 우리네 삶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악기가 자본에 의해 노동자를 해고하는 도구가 된 순간 더 이상 피와 땀의 소리가 나지 않은 채 돈의 냄새만 풍길 것 같습니다.

차마 자신들의 자부심과 같았던, 그래서 사람들이 기타를 들고 다니면 어디 기타인지 확인하는 그들이 콜트기타 불매를 선언하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돌아갈 공장이기에, 여전히 자신의 손으로 만든 기타를 사랑하기에 자신들의 입에서 차마 내뱉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그들이 요즘 거리에서 ‘콜트기타불매’를 외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노동자의 착취로 만들어진, 그래서 피와 땀의 소리를 들려주지 못하는 기타를 사지 말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기타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가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그들의 7년간 삶이 투여된 기타에서는 무슨 소리가 날까요?? 우리네 피와 땀의 이야기가 가장 잘 전달되는 기타,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존중과 사람의 존엄에 대한 소리가 그 기타에서 나지 않을까요? 그 소리가 빨리 듣고 싶습니다. 기타 노동자들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 기타를 만드는 날, 그 기타 소리에 흠뻑 취하고 싶습니다.

□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싶으시다면 아래와 같은 일정에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의 집 앞 - 야단법석
∙ 매주 목요일 정오 등촌동 콜트콜텍 본사 앞 - 목요집회
∙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서울과 인천 - No Cort! 콜트콜텍 기타 불매 유랑문화제
go top
후원인과의 인터뷰
지금 여기에서, 인권감수성의 의미를 다시 고민하고 있어요
nunc 님을 만나다

저는 홍이 님을 기륭전자 비정규직 싸움의 현장이나 용산 철거현장 추모 미사나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에서 종종 뵈었지요. 그러다 사랑방 후원인이라는 걸 알게 된 거 얼마 되지 않았어요, 수줍은 듯하면서도 호탕한 미소가 매력적인 홍이 님이 갑자기 궁금해져서 후원인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역시 인터뷰만 봐도 즐거운 웃음이 팍 튀어나옵니다. 열심히 활동할게요, 홍이 님, 후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리: 민선(상임활동가)

◇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nunc라고 합니다. nunc는 인터넷에서 주로 사용하는 닉네임인데요, ‘지금 여기’를 뜻하는 ‘Hic et Nunc’라는 말에서 따 온 것입니다. 항상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자는 의미에서 이 닉네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삶의 태도 때문인지 졸업 후 정규적인 일자리를 갖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로 연명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사는 게 무척 재밌습니다.

◇ 사랑방 후원을 어떻게 하시게 되었나요?

인권운동사랑방은 오래 전부터 인권영화제 때문에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서울인권영화제 초기부터 매년 참여해서 영화를 보고 티셔츠도 구입하고 했습니다. 물론 소극적인 참여였고 경제적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후원까지 할 생각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친구가 사랑방에서 자원활동가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후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사랑방 활동에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 눈길이 갔던 것이 있다면?

처음 사랑방 활동은 인권영화제밖에 알지 못했으나 후원을 시작하고 소식지를 받아보게 되면서 사랑방의 활동에 대한 이런저런 소식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소식지를 보며 가장 관심 있게 보았던 활동은 장수마을과 관련된 활동들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이화동 꼭대기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제가 살았던 곳과 비슷한 주거 환경을 가진 곳이자 바로 옆 동네 소식이라 흥미가 있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대도시와 같이 집단적이면서 동시에 파편화된 곳에서의 공동체의 가능성에 관심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지만 각자 서로 다른 일터로 출퇴근하면서 집, 동네, 마을이란 그저 잠만 자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단순한 숙식의 공간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써의 마을이란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라는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사랑방의 장수마을에서의 활동은 저의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데 약간의 힌트를 주는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재개발이라는 외적 압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자발적인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나 주제가 있다면?

며칠 전 이준석씨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동성애 관련 칼럼으로 인해 트위터 상에서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의견들이 나누어지는 가운데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회적으로, 일반적으로 차별의 대상이 된다고 여겨지는 상대에게 “너와 나의 다름”을 말로 다시 묘사하는 것도, 또 반대로 “너와 나는 같다, 평등하다”고 안 해도 되는 말을 하는 것도 다 차별입니다.”(@DrPatariro) 얼마 전 사랑방에서 보내준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란 책을 읽으며 ‘인권감수성’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인권감수성을 가진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 사랑방이 올해로 20년인데요, 사랑방에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20년 동안 꾸준한 활동을 해 오신 사랑방과 사랑방 활동가분들에게 존경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겨우 후원이나 하는 정도의 도움밖에 드리지 못하지만 항상 지지를 보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암울한 현실에 지치지 않고 항상 즐겁게 활동하시길 기원합니다.

go top
밥은 먹었소
2208년 촛불집회 유치장 브래지어 탈의 강요에 대한 국가배상청구소송 승소해

2208년 촛불집회에서 연행되어 유치장에서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받았던 피해자들과 함께 천주교인권위와 공동으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냈었습니다. 지난 5월 초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지난 반값등록금 집회 때도 연행된 학생에 대해 유치장 브래지어 탈의 강요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러한 불법적인 유치장 브래지어 탈의 관행이 중단되길 바랍니다.

분리º독립 후 치러진 18회 서울인권영화제를 축하하며 함께 해

올해 1월 11일로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분리·독립한 서울인권영화제, 그 본격적인 발걸음을 뗐습니다. 5월 2일 영화 속의 인권, 인권 속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 멍석을 펼친 포럼부터 5월 23일~26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18회 서울인권영화제, 그리고 5월 29~31일 앙코르 상영회까지 잘 마쳤다고 해요. 사랑방 활동가들도 독립 후 치러지는 서울인권영화제를 함께 축하하면서 영화제 기간 차별에 대해, 또 청소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부스를 운영했어요. 인권연구소 창, 인권교육센터 들에 이어 서울인권영화제도 독립하니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도 저마다의 역할을 더 잘해내기 위한 것이기에, 또 그 과정에서 우린 또 함께 만날 것이기에 섭섭한 맘보다는 설레는 맘이 더 커요. 서울인권영화제가 멋진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많은 지지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go top
훈창

안녕하세요. 훈창이에요^^ 요즘 매달 사람사랑에 무슨 활동을 하며 살고 있는지 후원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 참 좋네요. 저만 좋은 건가요?? 받아 보시는 분들은 어떤지 모르는데 왠지 설레발 친 것 같기도 하네요.

요즘 저는 매주 월요일마다 마포 민중의집과 요양보호사협회, 공공노조 돌봄 지부와 함께 진행하는 마포지역 요양보호사 컴퓨터 교실에 보조강사로 나가고 있습니다. 컴퓨터 교실이라고 이야기 하니, 사랑방 활동으로 가는 거야? 이전의 사랑방 활동과 다른 것 같은데? 이런 궁금증들이 생기지 않으세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왜 매주 월요일 마포지역에서 요양보호사 컴퓨터 교실을 가는지 이야기 드리려고 합니다.

마포지역에서 돌봄 노동자를 만나다.

작년 20주년 워크숍을 통해 사랑방은 앞으로 지향할 세 가지 활동 방향을 정하고, 안산과 마포에서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사람사랑에서도 이야기 드렸지만 이 활동은 1)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관계, 연결, 연대망 만들어가기, 2) 규범이 아닌 저항의 언어로서 인권 만들어가기, 3) 인권운동 영역을 넘어 세상을 바꾸려는 여러 운동, 에너지와 함께 하기, 이런 맥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매주 월요일 마포지역 요양보호사 컴퓨터 교실에 가는 것도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랑방 혼자의 힘이 아닌, 다른 운동들과 고민을 나누며 서로의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민중의 집을 비롯한 단체들과 함께 돌봄 노동자 조직화 활동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교실은 돌봄 노동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돌봄 노동자의 경우 대부분 고령 여성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것 중 하나가 컴퓨터입니다. 그래서 마포지역에서 열리는 컴퓨터 교실의 열기는 뜨겁습니다. 주1회 진행되는 수업은 정원 30명이 꽉 차 있고, 대부분 빠지지 않고 참석합니다. 강의하는 사람과 보조교사들이 쉴 수 있는 시간도 없습니다. 궁금하거나 모르는 부분은 바로바로 물어보니 2시간 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달밖에 안됐지만, 30명의 돌봄 노동자들의 얼굴 하나하나 기억납니다. 아직 익숙지 않은 마우스와 키보드에 손목 아파하면서도 잠깐도 쉬지 않는 모습을 생각하면 또 다음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지역에서 고령여성 돌봄 노동자와 만난다는 것

아직은 사랑방의 고민을 이곳에서 어떻게 풀어나갈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막연한 기대는 있습니다. 노동자라는 정체성, 노동이라는 키워드만으로 읽을 수 없는 고령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인권의 언어를 고민하는 것, 그리고 이들의 연결을 만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만든다는 건 아직 보이지 않는 실체이지만 두근거림을 느끼게 합니다.

첫 수업을 마친 뒤풀이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에서 그 두근거림의 실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40년간 시부모님을 봉양하고 있는 이야기, 철없는 남편 때문에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는 이야기, 결혼을 한 후 마포지역에서만 살았다는 이야기, 요양보호사를 하며 처음으로 월급을 받아 보았다는 이야기들에서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서 누군가의 엄마나 부인이 아닌 세상의 많은 것들을 헤쳐 나온 사람이 보였습니다.

이야기를 연결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만들어 가려 합니다

사랑방에서는 올 한 해 동안 이들과 꾸준히 만나려 합니다. 당장 상반기에는 컴퓨터 교실을 진행하고, 하반기에는 이들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자리를 진행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결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만들어 가려 합니다.

돌아오는 월요일이 되면 저는 컴퓨터 교실에 갑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그곳에서 이들의 연결을 고민합니다. 왠지 두근거리는 그 시간, 후원인 여러분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

go top
최은아

5월 13일 ‘인권운동사랑방 20주년 전체 활동가 워크숍’이 개최됐어요. 상임, 돋움, 자원활동가 약 25명이 참석해서 스무 살이 된 인권운동사랑방의 역사를 찬찬히 돌아보았습니다. 2012년 인권운동사랑방 상임, 돋움활동가들은 인권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세우기 위해 5회에 걸쳐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그때는 너무 초벌논의를 하는 상황이라서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논의를 하지는 못했어요. 이번 워크숍은 조촐하게나마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워크숍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검토하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로 기획했습니다.

이날 20주년팀은 ‘인권운동사랑방, 지난 20년을 돌아보다’라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이 글은 작년 워크숍의 결과물로 이후 자료집으로 만들어 후원인, 다른 단체 활동가들과 나누려고 해요. 20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 평가와 앞으로 인권운동의 전망을 담은 글이죠. 이 글은 크게 △창립 당시 시대적 배경과 인권운동사랑방을 만들기까지 문제의식, 주요 활동에 대한 평가 △1990년대 후반 진보적 인권운동을 외치기까지 고민과 주요 활동에 대한 평가 △신자유주의가 안착화 된 후 변화하는 대중의 조건과 대중운동의 쇠퇴 속에서 대중의 힘을 변혁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고민 등을 담고 있습니다.

막상 전체 활동가들과 함께 고민의 보따리를 풀어놓으니 오랫동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쉽게 공유되지는 않았어요. 20년 역사를 살펴보고, 평가를 공유한다는 것이 사실 워크숍 한번으로 해소되지 않을 수밖에 없을 텐데, 너무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또 저희들의 고민과 문제의식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것을 쉽게 풀어내는 방식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반성도 듭니다. 그럼에도 20년 역사를 살펴보면서 인권운동사랑방이 해왔던 활동을 자칫 ‘잘했다/못했다, 훌륭했다/부족했다’라는 식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자리가 어디로부터 출발한 것이지를 알아가는 과정, 그 가운데 우리는 어떤 지향을 갖고 인권운동을 벼려야 하는지를 묻는 과정으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지금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은 2200년대 중후반부터 인권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일이 중요했고 그것에 바탕을 두고 앞으로의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새로운 인권운동의 전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사실 1년의 워크숍으로는 부족하고 중심활동팀을 비롯해 올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으로 구체성을 갖고 녹여내면서 그 틀과 내용을 만들어 갈 계획입니다.

사실, 이 자리를 통해 워크숍에서 공유한 인권운동사랑방 20년 역사와 전망에 관한 이야기를 요약, 정리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방대한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판단이 들어 이번 달 20주년팀 활동이야기는 워크숍 후기로 갈무리 합니다. 20주년팀은 역사와 전망에 관한 이야기를 보완하기 위해 토론과 내용 수정 작업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또한 우리와 함께 고민을 나눌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건네려고 합니다. 수정, 보완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내용은 후원인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go top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넘어서
미류

4월이었다. ‘나무그늘’이라는 마포구의 마을 카페에 갔다가 “강제퇴거금지법 제정하라”는 제목의 서명용지를 마주쳤다.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특별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늘 서명을 부탁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로 강제퇴거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누가 듣고 있을까 궁금해 하며 말하던 것들에 메아리가 들린 느낌이랄까, 새로운 노래가 번져나가는 느낌이랄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 강제퇴거금지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면, 그건 반갑고 즐거운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누군가는 강제퇴거를 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는 말일 테니.

카페 ‘그’의 사연

서명용지에 적힌 카페 ‘그’를 찾아갔다. 카페 ‘그’는 강서구 방화동에 있다. 한 눈에 들어오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두런두런 모여서 얘기하기에는 딱 적당한 크기의 커피 가게였다. 카페 ‘그’는 2010년 8월말에 영업을 시작했다. 인테리어와 커피 볶는 기계 등 3천여 만 원을 투자해 시작했다고 한다. 건물 주인이 나가라고 한 것은 2011년 5월, 영업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된 때였다.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겠다며 두 달 안에 나가라고 했단다. 카페 ‘그’는 놀랐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가게를 나가라는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정말 놀랐던 것은 법이 세입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이런 경우 나가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가 최소 5년은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계약 갱신 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10조 1항 단서는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려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구청을 찾아가니 ‘민사 문제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건물주가 소송을 걸어 법원에도 갔지만 법원은 법이 그렇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카페 ‘그’는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임대차‘보호’라는 이름의 배제

힙합 그룹 리쌍 ‘덕분’인지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곧잘 나오고 있다. 리쌍이 건물을 샀고 1층에서 장사하던 세입자를 내보내려고 했는데 세입자가 항의를 하면서 언론에 오르내리게 됐다. 리쌍도 사실을 해명하겠다며 나섰다. 리쌍으로서는 억울한 심정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법대로 한 건데, 자기들보다 더 막무가내인 건물주들도 있는데,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더 지탄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대로’ 했는데 누군가 삶의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면, 그 ‘법’이 문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세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에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있다. 그런데 이 법의 ‘보호’ 수준이라는 것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주택은 2년까지, 상가는 5년까지 점유 기간이 보장되지만 그조차도 각종 제한 조치나 예외 조항이 있어 건물주의 나가라는 요구에 세입자가 대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개발 사업에서는 토지 및 건물 소유주들이 조합을 만들어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만으로도 세입자들이 나가야 할 의무가 생긴다. 법은 ‘보호’라고 하지만, 세입자의 권리는 배제되고 있다.

세입자가 퇴거에 응하지 않으면, 건물주는 법원에 판결을 구한다. 명도소송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법원은 뭘 따져 묻지 않는다. 카페 ‘그’의 명도소송에서도 법원은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겠다는 의사가 법으로 보장된 것이라고 오히려 인정해줬다. 각종 개발 사업에서도 그것이 바람직한 개발 사업인지 묻지 않는다. 명도소송에서 세입자의 권리가 보장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법부는 퇴거가 정당한지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퇴거를 정당화하고 있다. 게다가 지자체 역시 자신의 관할 행정 구역 안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도 ‘민사’상의 문제라는 이유로 팔짱만 끼고 있어 사실상 건물주가 막대한 권한을 승인받게 되는 상황이다.

임대차보호 이전에 권리를 다시 구성해야

이탈리아는 세입자에게 최소 4년의 기간을 보장하고 세입자가 원할 경우 다시 4년을 더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집주인이 재계약을 거부할 수 있는 조건은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6개월의 기간을 보장해야 하고, 만약 65세 이상의 노인이 있거나 세입자가 실업 상태일 때에는 18개월까지 거주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퇴거를 요구할 때에는 법원을 통해 권한을 구하도록 한다. 그리고 법원은 세입자에게 퇴거를 요구할 만한 사유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본다.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겠다고 주장하더라도, 재건축을 해야 할 정도로 건물이 낡았는지, 또 다른 재건축의 필요성이 있는지 검토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세입자의 점유권을 보장한다.

임대차계약기간을 얼마나 보장하는 것이 적절한지, 임대료는 어느 정도까지 제한하거나 규제하는 것이 적절한지, 이런 것들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집이나 건물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거주하고 영업하기 위한 점유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하는 것은 모든 나라가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인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꾸려 나가는 집이나 가게는, 인권의 장소다. 어떤 건물을 소유했다는 사실이 다른 누군가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리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가 모두 절대시하는 ‘재산권’은 인권과 겨루는 권리가 아니다.

재산권은 역사적으로 구성되어 온 권리이며 지금도 구성 중이다. 재산권이 신성불가침의 원리인 것처럼 다루며 국가는 재산권의 수호가 자신의 가장 큰 임무인 것처럼 행세한다. 그러나 각종 국책사업들이 추진되는 것을 보면 재산권이 쉽게 무시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이주해야 했던 6만 여 명의 농민들, 평택 미군기지 확장으로 이주해야 했던 수백 명의 농민들이 그렇게 삶터를 잃었다. ‘민사’의 문제라고 간주되는 개발사업도 사실 다르지 않다. 재산권을 존중하는 것은 언제나 더 가진 자들의 재산을, 그들이 하고자 하는 사업을 옹호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할 삶의 장소

카페 ‘그’는 강제퇴거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서명을 받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강제퇴거금지법안에 대한 검토의견서의 핵심 내용은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 ‘국책사업 추진의 어려움’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금 강제퇴거라는 중대한 인권침해를 발생시키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카페 ‘그’가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개정으로 부족하다고 느낀 이유도 그것이다. 삶의 장소에서 누구도 함부로 쫓겨나서는 안 된다는 인권의 기본적 원칙을 세우지 않고서야 언제든 문제는 다른 양상으로 반복되어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은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갈등이나 충돌 이상의 문제다. 누군가에게는 건물이 등기부등본에 기록된 재산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예술로서의 건축디자인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이정표이기도 할 테고, 친구나 애인과 만나거나 헤어졌던 기억이 담긴 장소이기도 할 테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도 정작 그 곳에 붙박고 사는 사람들의 권리는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회는 그만큼 ‘사람’을 놓치거나 배제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삶의 장소에 대한 권리가 이야기되어야 한다.

go top
저항과 연대의 권리를 위해 열린 ‘꽃보다 집회’
정록

지난 5월 29일 대한문 앞에서 ‘꽃보다 집회’라는 집회가 열렸다. 아니, 열리려다가 아니나 다를까 경찰의 분탕질로 난장판이 되었다. 그날 집회는 ‘집회 시위 제대로’ 모임에서 제안해서 열린 자리였다. 사람들이 모여 사회에 대해, 정부정책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나누는 자리인 ‘집회’가 지금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우리가 절대 양보하고 포기할 수 없는 집회 시위의 자유, 저항과 연대의 권리를 위해 앞으로 함께 할 구체적인 행동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런 선언을 하기에 적절한 장소가 대한문이었다.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에 일어난 24명의 사망. 이를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와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농성장이 들어선 곳이 대한문이다. 그런데 지난 4월 방화사건이 일어나 농성장이 불타고 그 이후 경찰과 중구청은 아무 근거도 없이 인도에 화단을 조성해 분향소와 농성장이 들어설 자리를 밀어냈다. 이미 집회신고 장소로 접수된 곳을 남대문경찰서 혼자서 집회불가지역으로 설정한 것이다. 특히 그 이후부터 경찰들은 대한문 앞을 무슨 전쟁터처럼 만들었다. 화단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과잉대응, 대한문 주위를 넓게 둘러싼 경찰병력들, 언제나 상주하고 있는 경찰버스들까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서울시내 한복판에 차린 분향소와 농성장이 안에서는 꽃밭에, 밖에서는 경찰들에 겹겹이 둘러싸인 형국이 되었다.

그런 장소에서 수십 명이 모여 집회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회에서 집회시위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꽃보다 집회’ 참여자들은 대한문 앞에서 너무나 당당하게 자신들이 정당한 공무집행을 하고 있다고 믿는 경찰들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죽비가 되고자 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개최한 집회마저도 경찰은 꽃밭을 지켜야 한다면서 집회 장소에 난입했다. 경찰들을 집회 장소에 세워둔 채 행사를 진행할 수 없었던 우리는 집회 장소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음을 명시한 집시법을 근거로 들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 과정에서 심한 몸싸움이 벌여졌고, 경찰은 눈을 조준하며 최루액을 뿌리기 시작했다. 집회 장소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 최성영은 방송차로 시끄럽게 해산과 연행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모조리 채증하라고 하면서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최성영의 당당함은 정말 명불허전이었다.

그 순간 ‘지금 집회를 방해하고 있는 경찰은 당장 해산하십시오. 해산하지 않을 시에는 집시법 3조 1항을 위반한 경찰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라는 마이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경찰에게 더욱 거세게 항의했고, 몸으로 밀며 집회 장소에서 몰아내려고 했다. 이게 정당한 공무집행이냐며 사람들은 앞에 선 경찰들에게 지금 당장 소속과 이름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 전까지 참가자들에게 자기들 밀지 말라고, 흥분하지 말라고 하면서 당당하게 소리치던 경찰들이 눈길을 피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거나, 다른 곳을 응시하면서 묵묵부답이었다.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큰 소리 치더니 왜 이름을 밝히지 못하냐는 항의에 한 마디도 못하던 경찰들. 대체 집회 참여자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마스크까지 쓰면서 집회장에 나타나는 건지 알 수 없는 경찰들이었다.

경찰과 싸울 때 그 어느 때보다 당당했던 우리들은 그 날 간단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냥 당위적이고 원칙적인 이야기만 쓴 게 아니라, 집회시위를 하는 모든 이들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선언이었다. ‘준법서약서는 쓰레기통으로’, ‘집회신고는 우리의 필요에 따른 선택이다’, ‘집회를 방해한 경찰의 신분을 밝혀내 책임을 묻는다’, ‘경찰이 자행한 인권침해보고서를 작성해 공론화한다’, ‘집회는 허가제가 아니므로 금지보완통고에 적극 대응한다’ ‘검찰과 경찰의 부당한 소환과 수사에 공동 대응한다’

현행법마저 어기는 자신들의 행동이 정말로 당당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경찰들에게, 진짜 정신 번쩍 들게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집회 시위의 권리는 당당한 우리의 자유이자 권리고, 너희는 그걸 보호해야 한다고. 요즘 집회 현장에 있다 보면 이들이 상부의 부당한 지시를 어쩔 수 없이 행해야 하는 경찰이 아니라, 정말 자기들 행동이 정의롭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든다. 우리도 쟤네는 원래 그렇다며 체념하지 말고, 당당히 주장하고 맞서 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go top
민선

2208년 여름부터 인연을 맺게 된 성북 장수마을, 당시 사랑방 내 주거권팀에서 ‘개발’의 문제를 말하는 것을 넘어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대안적인 모색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지요. 실제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주거환경이 개선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대안적인 개발계획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 부딪혀보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를 하면서 대안개발연구모임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3차년도까지의 프로젝트 사업으로 시작한 활동이 여러 상황으로 인해 길어지고, 활동의 모습 또한 다양해지면서 참 많은 단위/활동가들이 함께 해왔네요.

그리고 그렇게 5년여 간의 활동으로 장수마을에 대한 서울시와 성북구의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고, 작년 장수마을 역사․문화 보존을 위한 종합계획 수립 용역이 발주되었어요. 종합계획안 마련을 위해 열심히 주민들을 만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고, 그 계획안을 서울시와 성북구와 함께 논의해왔습니다. 그 결과 4월 장수마을을 재개발 예정구역에서 주거환경관리사업 구역으로 전환하기로 했고, 올해 안에 본격적인 사업 추진을 해나가게 되었어요. 앞으로 사업추진과정에서 효과적으로 개입하고 주민들과 더 긴밀히 만나는 몫이 마을기업 동네목수에 있기에, 이를 응원하면서 대안개발연구모임은 해소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고, 장수마을이 마을재생사업의 의미 있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기에 해소하면서 평가와 과제를 잘 남기기 위한 좌담회를 가졌지요. 그리고 초기부터 대안개발연구모임에 함께 했던 사랑방은 어떤 가능성을 보았고, 어떤 어려움에 부딪혔는지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지난 5월 사랑방 활동가들과 함께 가졌어요.

사랑방이 주로 했던 역할은 주민과의 관계 형성을 위한 것이었어요. 2208년에는 재개발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이 어떤지, 집과 동네의 불편한 점을 무엇으로 꼽는지, 환경이 개선되더라도 보존되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등등을 같이 나누기 위해 워크숍을 준비했었지요. 그렇게 나온 이야기들을 토대로 어떻게 계획안에 담을지 관련 법제도를 검토했던 2209년, 서울성곽과 삼군부 총무당이라는 문화재를 위아래로 끼고 있어 제약이 많은 장수마을의 조건, 그리고 주민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고려할 때 철거하여 새로 짓는 방식이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지요. 그래도 당장 위험하고 불편한 점들은 바꿔나가야 하니 주민들과 좀 더 일상적으로 만나면서 할 수 있는 시도들을 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2010년부터는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주민들과 일상에서 재미나게 만나기 위해 마을학교, 마을잔치, 골목길 환경개선 프로젝트 등등을 해왔지요. 집수리형 마을기업 동네목수를 2011년 만들면서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을 고쳐서 다시 생기를 불어넣기도 하고, 미장, 도배 등 주민들이 갖고 있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그렇게 조금씩 변화를 일구면서, 그리고 뉴타운 재개발에서 주거재생으로 공공영역이 개발기조를 달리하게 되면서 장수마을이 주목을 받게 되었어요.



하지만 어려움도 많았고 여전히 갈 길이 멀어요. 작은 마을임에도 골목별 공동체만 긴밀하고 다른 골목과의 교류, 마을 전체에 대한 고민으로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작년부터 골목통신원 모임을 하면서 다른 골목 주민과의 교류, 골목단위에서 나아가 마을이 풀어야 할 숙제로 조금씩 확장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주민들의 마음이 움직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당장 무언가 마음을 먹고 하기에는 확신이 서지 않는 것도 있고, 먹고 살기가 빠듯하니 무언가 같이 하기에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같이 머리를 맞대는 과정, 그리고 힘을 모아 작더라도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드는 것, 이러한 과정과 결과가 맞물리면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한 발짝 더 나가게 하는 힘이 되고, 한 사람 더 함께 하는 동기가 될 테니까요.

사업추진을 하면 민-관 협력체계가 보다 분명해질 텐데, 여러 제도에서 강조하고 있는 ‘주민참여’가 말만이 아닌 정말로 의미로 자리하려면 또 여러 노력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서로 기대하는 속도도 다르고, 온도도 다른데 그런 간극을 좁히기 위한 과정들이 있어야겠지요. 지속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겨서 예상보다 느리고 그림이 잘 나오지 않아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시행착오들을 충분히 겪어내면 좋겠습니다.

지난 5년간 마을활동의 의미가 확장되고 주민들을 다양하게 만나면서 어떤 것이든 하나의 권리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총체적인 삶의 문제, 관계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정든 이웃이 함께 사는 장수마을의 꿈이 현실로 계속 자라나도록 응원합니다. 그동안 주민들과 함께 그린 밑그림에 다채롭고 아름다운 색들이 입혀지길 기대하며, 앞으로도 장수마을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려요. ^^ (장수마을 홈페이지 www.jangsumaeul.com)

go top
명숙

‘동등한 사람으로 대우받을 권리’

너무나 쉽기도 하고 상식적이기도 한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왜 절실한 것일까요? 그리고 왜 그 ‘누군가’들은 서로 닮아있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걸까요?

얼마 전 4회 청소노동자행진 선포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각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권리를 상자에 써서 와서 행복탑을 쌓기로 했어요. 기자회견에는 저와 최근 사랑방에서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안학교의 청소년활동가 자희 씨도 함께 갔지요. 자희 씨가 쓴 권리도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권리’였는데 거기서 만난 남성청소노동자가 쓴 것도 그것과 비슷했어요. 아마도 그 분도 일터에서 청소노동자라고 얼마나 모욕적인 처우를 받았겠지요. 참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씁쓸했어요.

왜 이 땅에서 청소노동자는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 할까? 왜 청소년은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할까? 왜 이들은 같은 권리를 말할까? 그래서 결국 같은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함께 싸울 수밖에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사랑방이 청소노동자행진에 참여한지 햇수로 4년, 올해의 청소노동자행진 모토는 ‘행복할 권리를 찾아서’예요. 앞의 권리상자 이야기에도 나왔듯이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권리는 너무나 많은 소수자들이 ‘너무나 많은 위계와 기준’ 때문에, 누군가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누리고 있지 못하지요.

함께 만들어가는 4회 청소노동자행진

청소노동자의 권리가 우리 모두의 권리와 연결되었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기 위해 사랑방은 시민캠페인을 했답니다.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4회 청소노동자 행진을 알리는 캠페인을 서울인권영화제가 열렸던 청계광장에서 말이지요.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청소노동자나 청소노동에 대한 편견을 알기 쉽게 게임으로 시민들과 이야기하는 자리도 가졌답니다. 그 외에도 지지메세지를 쓰기도 했구요.

최근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말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새로 취임한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정규직으로 바꿔도 임금이나 휴게 공간 등이 그대로라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원하는 건 무늬만 정규직은 아닐 테니까요. 그런데 최근 정규직은 되었지만 조건은 그대로인 곳도 있어서 정규직화의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0년과 2011년 ‘청소노동자에게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라는 캠페인을 하면서 청소노동자의 휴게공간이나 산업안전 문제가 많이 알려지자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을 알아서 개정한 적도 있었지요, 하지만 최근 노동부가 고시한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학교청소노동자’들은 그동안 일구어온 권리마저도 누릴 수 없게 될 위기에 있어요. 교육서비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제외한다는 단서조항이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부 면담을 통해 더 확실하게 할 예정입니다.) 행복은 결국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구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번 4회 청소노동자행진의 주요 방향 중에는 진짜 행복을 위해서 청소노동자가 청소노동자를 찾아가는 것도 있습니다. 주변의 동료 노동자가 행복하지 않고 비참한 삶을 산다면 정말 혼자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미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고, 그래서 조금은 나은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조직된 청소노동자들이, 조직되지 않고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미조직 청소노동자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답니다. 조직된 청소노동자들과 미조직 청소노동자들의 간담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장 청소노동자들이 권리를 외치고 행동하지 않더라도 그/녀들을 지지할 많은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청소노동자건 아니건, 조직된 청소노동자건 미조직된 청소노동자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권리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서로가 외면하거나 충돌하기보다는 함께 할 때 그 권리가 더 보장되지 않을까요?

청소노동자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은 분들은 오세요. 6월 14일 금요일 4시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입니다. (참, 올해도 청소노동자들의 콩트 공연이 짧게 있는데요, 이번에는 제가 연출을 합니다. 와서 한번 보시고 첫 연출작 품평해주세요^^)

go top
사랑방의 한 달
사랑방

인권운동사랑방의 20년을 돌아보는 워크숍 진행했어요

5월 13일 사랑방 전체활동가들이 모여 인권운동사랑방의 20년을 돌아보는 워크숍이 열렸어요. 스무살 사랑방이 어떤 고민에서 출발했었는지, 어떤 사회현실 속에서 어떻게 사회운동과 관계를 맺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개괄적으로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2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사랑방 운동방향에 대한 현재적 고민에 이르기까지 작년부터 몇 차례 워크숍을 통해 나눴던 이야기들을 짧고 압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맥락들을 잘 드러내면서 이야기를 풍부하게, 구체적으로 풀어보기 위한 노력들을 더 해나가야겠지요. 20주년 워크숍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활동이야기>를 읽어봐주세요~

평등과 반차별의 깃발을 휘날립니다

지난 활동이야기에서 잠깐 이야기 드렸지만,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는 6월부터 방방곡곡에서 반차별과 평등의 깃발을 휘날립니다. 6월 14일 광화문광장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금요일 점심시간 1인시위이 시작되고 6월 18일, 25일 저녁 7시 30분에는 대한문에서 <평등예감_"을"들의 이어말하기>가 진행됩니다. 차별과 평등의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그 자리에 오셔서 함께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10년의 발자취를 정리 중

2204년 발족한 인권단체연석회의가 올해 조직 전망 논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정기회의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고 소속 단체들의 활동에도 여러 변화들이 있었거든요. 형식적인 틀을 유지하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인권운동 전반을 돌아보는 열린 시선 속에서 미래를 도모하자는 취지의 논의를 계획 중입니다. 이를 위한 기본 사업으로 인권단체연석회의 백서를 준비 중입니다. 10년치 기록을 모아서 묶고, 흐름을 살필 수 있도록 역사를 정리하고 있어요. 당장 달려가야 할 곳이 많은데 옛날 기록들을 들여다보려면 속상할 때도 있지만, 인권운동이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딘지 헤아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자료가 될 듯합니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인권운동의 10년에 대한 평가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종북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종북관련 1차 워크숍 개최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은 5월 11일 ‘종북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1차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있는 종북 논란의 핵심은 무엇이고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인권사회단체활동가들이 편하게 이야기하자는 취지로 기획되었습니다. 먼저, 공안기구가 어떻게 종북 담론을 통해 자신의 권력기반을 만들고 강화하는지 살폈고, 이 사회가 안전담론을 통해 어떻게 종북을 이용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차 워크숍은 대응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눌 계획입니다. 종북 담론에 관한 내용은 <인권오름>을 통해 기획기사로 나갈 예정입니다.

인권위 공동행동, 인권위법 개정안을 만들기 위해 가동

인권위 공동행동이 2010년부터 인권위법 개정안 논의를 했는데, 현안 투쟁을 하느라 발의를 못했어요. 그래서 2013년에는 이명박 정부 5년을 거치면서 보완되어야 할 인권위법안과 관련법(국가재정법,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만들어서 발의하기로 했어요. 먼저 개정안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고, 6월 25일 인권위 관련 활동을 하는 인권단체들과 전문가, 활동가들이 모여 공개 워크숍을 하기로 했답니다. 크게 개정방향은 1> 인권위 독립성 2> 인권위원 선출 3>인권위 조사대상 확대와 투명성 확보랍니다.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한국인권옹호자 실태 파악을 위해 한국 방문한 특별보고관

유엔 인권옹호자특별보고관이 한국을 방한했어요. 한국에서 인권옹호자들이 어떻게 탄압받고 있는지, 인권옹호활동을 증진할 제도는 잘 마련되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5월 6일 한국에 있는 인권활동가들이 '한국 인권옹호자 실태 보고대회'를 했습니다. 주요 탄압 경향과 현실을 알리는 자리였습니다.



지금 방한한 마가릿 세네키야 특별보고관은 정부부처도 만나고 인권활동가들도 만납니다. 인권활동가들은 서울에서는 6월 1일과 2일에 주요 영역별 옹호자들을 만나고 3일부터는 지방에 간답니다. 울산에 있는 현대차 사내하청 인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활동가들을 만납니다. 민주화의 상징인 광주도 방문하구요. 사랑방은 인권위, 주거 등에 결합하고 전체 실무진에 참여하고 있답니다.

사회권 선택의정서 관련 비준 촉구 기자회견

유엔 사회권 선택의정서가 5월 5일 발효됐어요 선택의정서는 국내에 있는 구제절차(대법원까지)를 모두 거치고도 인권침해에 대해 구제되지 않으면 유엔인권기구에 진정할 수 있는 절차가 생기는 거지요. 한국정부는 고문방지협약이나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도 비준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권 선택의정서는 더욱 비준을 안 하려고 할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4월 16일 토론회도 했고, 5월 2일 국회비준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할 예정입니다.

노동윤리 기사작업을 위한 추가 인터뷰 작업 했어요

우리 시대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인터뷰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사실 그동안 불안정노동자나 장애인 홈리스 등은 인터뷰를 진행되었던 데 비해 대기업 노동자는 인터뷰이 찾기도 힘들었답니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노동을 하느냐가 노동윤리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 노동자 인터뷰가 중요했는데, 드디어 찾아서 인터뷰를 했답니다. (왜 우리 주변에는 오랜 시간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일한 사람이 그렇게 적은지….^^ ) 이제부터 인터뷰 및 정리를 위한 논의도 천천히, 차근차근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표현의 자유 확대를 위한 페스티벌 “불온한 예술들”, 거리를 활보하다!

표현의 자유연대는 5월 9일 광화문 광장 앞에서 표현의 자유 확대를 위한 페스티벌 “불온한 예술들” 이라는 주제로 플래시 몹을 진행했습니다. 경찰과 검찰이 예술로서 표현되는 행위를 범죄화한 것은 수도 없이 많지요. G20을 풍자한 쥐 포스터에 ‘재물손괴’죄를 적용한 사례도 있었고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 얼굴을 그린 그림도 경범죄로 처벌했어요. 또한 신고되지 않은 플래시 몹에 대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낙인을 찍은 사례도 있었구요. 표현의 자유 연대는 이러한 경찰에 대한 불복종 차원에서 신고하지 않고 플래쉬 몹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가면과 다양한 예술가들의 얼굴가면을 쓰고 서로 재미나게 광화문 광장에서 놀았지요. 줄넘기, 공기놀이 등 물론 재미있었고 지나가는 시민들도 주의를 기울이며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한편, 같은 날 표현의 자유연대는 ‘예술[藝術], 헌법 제22조를 반추하다’는 주제로 포럼을 진행했습니다.

국회의원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 반대 성명서 발표

표현의 자유 연대는 4월 25일 ‘국회의 이석기 의원, 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두 달 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30명의 의원이 이석기, 김재연 두 국회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안을 제출했습니다. 자격심사라는 방식이 부적절함을 지적하면서 실제 이들에 대한 자격심사가 ‘종북’ 낙인의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정당과 국회의원은 자신의 정치이념과 정책을 국민에게 알리고 선거를 통해 심판받습니다. 정당과 국회의원이 어떠한 사상과 정치적 이념을 표방하는가는 헌법상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그리고 정당제도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go top
아그대다그대 아그대다그대는 작은 과일이 조발조발 열린 모양이라는 뜻입니다   
이번 달에는 내 인생의 갑을 을 아그대다그대 이야기합니다

돌진

군대를 갓 제대하고 알바를 구하면서 나름 면접이란 걸 봤는데 면접 분위기도 좋았고 결과도 좋았지만, 면접하는 내내 왠지 내가 일방적으로 평가당하고 있다는 불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면접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나 그때 오갔던 이야기와는 전혀 무관하게 그 자리 자체가 불쾌하게 여겨졌다. 불쾌하면서도 잘 보여야 한다는 마음 또한 사라지지 않아서 더 우울했던 기억.

사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는데, 어느덧 불쾌함보다는 잘 보여야 한다는 마음이 역전해버렸다. 갑과 을을 왔다갔다 하는 요즘, 알량한 갑의 자리에서 미끄러지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을의 자리에서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유성

평생 갑의 마인드로 살았던 것 같다. 운 좋게 가질 수 있었던 몇몇 자원들 덕에, 그런 환상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는. 내게도 예외 없이 조여 오는 목줄을 느끼니, 세상 사람들이 달리 보인다. 좀 겸손해져야겠다. ㅎㅎ

ㅎㅊ

개인적으로 절 아는 사람들은 다들 알만한 이야기....

후보 철회. 여기까지!! 더 이상은 비밀이에요ㅋㅋㅋ

유성

충분한 숙고 없이 발언했다가,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지레 겁먹어 철회하는 일이 가끔 있다. 발언은 꼭 숙고 끝에 하고, 한번 질렀으면 충분한 비 판적 검토가 이루어질 때까지 철회하진 말아야겠다. 이런 재미없는 일기장 반성 문을 여기다 쓰는 건 철회할까 하다, 숙고 끝에 그냥 두기로.

ㅎㅊ

사실 잘 모르겠다.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관계가 형성되면서 때론 갑이 되기도 을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는 그러했다. 하지만 그곳에 다른 것들이 개입된 순간부터 난 을이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내 사장이 집에 보내주지 않으면 혼자 궁시렁 거리며 어쩌지 생각하고 세입자로 살며 집주인의 눈치를 항상 본다. 학교에서 교사가 반항한다며 폭력을 행사할 때 저항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난 갑과 을로 고정되는 관계를 최대한 피한다만, 세상사는 게 절대 피할 수 없는 거였다ㅠㅠ 새로 이사한 집에서 주인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는 요즘. 새삼스레 갑을관계를 절감한다.

바람소리

갑이라.. 한번도 갑이었던 적이 없었던 듯... 그런데 슬프지는 않다. 다만 여러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내가 '을들의 연대'를 위해 열심히 실천한 적도 별로 없었던 같아 조금 아쉬울 뿐, 미안할 뿐.....사실 을들이 연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나도 안다..

그러니 을들의 연대란 '천천히 그러나 끈끈하게' 해야하는 것! 을로서의 삶을 살기도 힘든 시기인지라..... 그러니 놓지 말자, 을들의 연대!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말자! 천천히 계속 가자고 다짐하는 수밖에

모든 관계가 권력관계라는데, 대부분 을의 위치성에 있지만서도 사적인 관계들 속에서 전 갑이 되고픈 맘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평등한 관계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미류

매주 상임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인권으로 읽는 세상]을 쓰고 있다. 몇 주 전 주제가 '갑을'이었는데 원래 쓸 순서였던 활동가가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몇 차례의 교환을 거쳐 결국 내가 쓰게 됐다. 덕분에 세 활동가에게 '갑'이 되는 거래가 성사, 호시탐탐 맛난 거 사달라 조를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 그런데 다들 바빠서 맛난 건 아직 머리 속에만 있다. 흑흑.

승은

20대 초반 영어회화 테이프 셋트를 엄청난 액수를 주고 구입했다가 반품을 한 경험이 있다. 가격이 몇 십 만원이었는데 당시로서 꽤 큰 돈이었다. 살 때까지는 내가 갑이 된 것 같은데 돌려주려 할 때는 을로 내 처지가 변해있었다. 돈으로 돌려받기까지 꽤 맘 고생을 했다. 지금도 기업은 소비자가 왕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소비자 권리는 을의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아그대다그대는 작은 과일이 조발조발 열린 모양이라는 뜻입니다.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