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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옳다고 믿는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소박한 꿈을 품고... 이하나(자원활동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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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인권운동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중학교 때입니다. 친구의 꼬임(?)으로 청소년수련관의 ‘옴부즈만’이라는 어떤 동아리를 들게 되었는데요, 알고 보니 청소년 인권 동아리더라고요. 우연히 만나게 된 ‘인권’ 그리고 ‘인권운동’. 아마 사랑방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그 때부터 만들어졌던 게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당시에는 ‘인권’이라는 멋있는 단어에 제 자신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졌어요. 인권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고, 두발 자유 시위를 나가고, 각종 축제를 준비하면서 보람도 느꼈지만, 약간의 실망감도 느꼈습니다. 그 실망감이라는 건 뭐랄까, 정말 멋있어 보였던 ‘인권 동아리 활동’ 이라는 게 약간은 시시하게 느껴졌다고 할까요. 축제를 준비하는 건 마치 학교 환경 미화하는 것 같았고, 인권 담론에 대해 배우는 것보다 행사에 참여하는 데 더 의의를 두는 것 같았거든요. 아무래도 청소년 동아리이다 보니 인권에 대한 이론적 접근은 힘들었을 것 같지만 그 당시 저에게는 활동은 많은데 알아가는 것은 없는 거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약간 들었습니다. 이후 고등학교 생활이 바빠지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동아리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죠. 중단했을 때만해도, 그 동아리는 그냥 스쳐가는 인연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이후 저는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 고등학생으로 지냈습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내신 1점에 목숨을 걸지만 사회 현안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는 그런 학생 말이에요. 죽음의 트라이앵글 중 한 축을 담당하는 대입논술을 대비하기 위해서 학교 논술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에도 제 자신이 시사문제에 꽤나 무지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러던 중 저는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학교 논술 신문 제작에 참여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글쓰기 실력을 높이기 위해 들어갔지만 정치 파트를 맡고 기사를 쓰게 되면서 사회 문제 특히 한국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한창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정부(지금의 이명박 정부)가 구성될 때였어요. 그래서 전 이명박 당선인의 도덕성 문제를 주제로 ‘지도자의 도덕성과 능력’에 관한 기사를 썼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주제여서 쓰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고 여러 기사들을 찾아 읽으면서 사회문제에 눈을 어렴풋이 눈을 떠갔던 것 같아요. 또한 아무래도 당선인에 관한 기사를 쓰다 보니 새롭게 구성된 행정부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고요.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저는 상당히 진보적인 학교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수업 때 시사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선생님들 덕분에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분노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을 보냈죠. 그러던 중 촛불집회가 터졌습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에서 촉발된 시위는 저와 같은 여고생들이 주축으로 시작되었는데요, 시위에 직접 참여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 집회에 관한 소식을 들으면서 저는 우리와 같은 청소년들이 정부에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제 두근거림은 예전 ‘옴부즈만’ 동아리에 있었을 적, ‘두발 자유 시위’에 참여했던 정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강경진압이 시작되고, 군홧발로 시위에 참여한 여대생을 짓밟는 모습을 목격하고 나자, 제게 촛불집회는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억압권력에 맞서는 저항’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때 이후로 저는 이 정부에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민주화된 세상을 공기처럼 당연시해왔던 저에게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정부가 시민들을 직접적으로 탄압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전 군사 정권과는 다르지만 같은 독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지금까지 민주화에 역행하는 ‘비정상적’인 정부로 규정짓기까지 했습니다. 이 생각이 비록 불완전하고 편협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제 분노와 충격은 컸고, 이에 따라 사회문제에 대한 저의 관심도 더더욱 깊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때 즈음 국민의 분노도 커져 촛불집회는 세종로 거리를 모두 뒤덮는 대규모의 물결이 되었습니다. 이슈 또한 쇠고기 협정 문제에서 이명박 정부의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 전반으로 넓어져 한국 사회의 각종 사회문제를 아우르고 있었습니다. 경쟁 지상주의적인 교육 문제, 비정규직 문제, 의료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문제 등 수업시간에 선생님들로부터 들었던 사회문제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직접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서 저는 시민의 힘으로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희망을 품고 저 또한 사회를 변혁시키는 데 앞장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이 희망도 잠시, 촛불집회는 사그라진 이후 정부의 강경한 탄압과 보복이 시작되었습니다. 피디수첩 탄압, 언론장악, 그 과정에서 해직된 기자들, 근현대사 교과서 개정 문제, 4대강 사업의 일방적 추진 등등 수많은 현안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고 정부의 반민주적 행보도 가속화되었습니다. 막 사회에 눈뜨기 시작한 저에게 이 모든 것이 홍수처럼 다가와 분노하다 지쳐 혼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혼란 속에서도 저는 이 사회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만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짐을 했습니다. 절대로 잘못 돌아간 사회에 야합해서 살지는 않겠다고. 그 사회를 조금이나마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 때 오랫동안 지녀왔던 외교관의 꿈도 버렸습니다. 쇠고기 협상을 할 때 보았던 영혼 없는 관료가 되기가 싫었고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혼란의 와중에서 저는 사회문제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제 입장을 가지려고 노력했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2009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2009년,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무렵은 2008년과는 또 다른 충격을 맞았습니다. 2008년에는 촛불집회를 비롯한 각종 저항에 열정이 끓어올랐다면 2009년에는 그런 혁명의 좌절, 반대세력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을 지속적으로 목도한 해였다고 할까요. 연초에 일어난 용산참사는 고3 내내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6명이 죽는 끔찍한 사건이 터졌는데도 사람들이 무관심해하는 모습에 저는 절망을 느꼈고 명예회복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을 끝끝내 외면하며, 심지어 그들에게 ‘테러리스트’라는 독설을 퍼부으며 가슴을 타들어가게 하는 이 사회가 미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미웠습니다. 수험생이라는 핑계로 참사현장에 가지 않고, 아무 일에도 나서지 않는 제가 미웠습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 학교 기도실에서 기도할 때 저는 항상 다짐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삶을 살겠다고, 그 사람들과 함께 억압에 저항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 당시 제게 ‘사회적 약자’의 표상은 ‘용산 참사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과 꼭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과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용산 참사 유가족들이란 이미지 외에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건 어느 정도 될까. 그런 생각에 미치자 저는 현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느끼고 함께 아파할 수 있어야 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이 이어져 아마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작년 한 해 제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사회 전반에 퍼진 무관심과 무력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진로와 대학을 결정하는 시기라서 저는 선생님들로부터 ‘현실적인’ 혹은 ‘속물적인’ 이야기와 가치를 계속 주입받아야 했고 그것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공부 못 하는 학생, 대학 못 가는 학생을 대놓고 무시하는 선생님의 태도가 싫었고, 사회비판적인 성향을 가진 제 면전에 ‘대학 가서 시위 같은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마라’, ‘네 인생만 망칠 거다’, ‘마치 사회의 지성인인 것 마냥 굴지마라’ 라고 마음에 비수를 꽂는 선생님 때문에 아팠습니다. 소위 진보적이라는 선생님들조차 ‘지금은 능력을 길러 나중에 큰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가거라.’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물론 그게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저에게는 일종의 배신처럼 느껴졌습니다. 사회의 부조리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씀해주신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서 더 그랬던 것일까요. 우리는 분명 민주적 권리를 가지 시민인데, 사회가 잘못하면 비판할 수 있고 항의할 수 있는 주권자들인데, 왜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잘못처럼 여겨지는 것일까요. 아직 우리 사회가 충분히 민주화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그 때 마치 제 주위에 모든 것이 저를 압박해오는 듯했습니다. 어쩜 그 ‘잘못된’ 사회는 제가 바꾸어야 할 것이 아니라, 제가 순응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은 공정택 전 교육감이 학교를 방문한 날이 있었습니다. 학교 지원을 위해 방문한 것인데 한창 비리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공정택 교육감이 제 학교로 온다는 것이 몹시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1인 시위라도 할까 고민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참으라고 하셨지만 전 참는 대신 자율학습실에 있는 제 책상에 ‘부패한 교육감은 물러가라’라고 낙서를 했습니다. 이것마저도 하지 않으면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울 것 같았죠. 이후 한동안 그 낙서는 잊혀지는 듯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담임선생님을 통해 생활지도부로부터 낙서를 당장 지우라는 명령을 듣게 되었고, 자습실 책상 위에도 ‘공공 기물을 훼손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에 뭐라고 할 수 있나요? 당장 지우세요!’ 라는 쪽지가 있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기에 앞서 우선 불같이 화가 났습니다. 사회에 뭐라 할 자격이 없다는 소리도, 당장 지우라는 소리도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낙서가 ‘높으신 분’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면 생활지도부실에서, 자습실에서, 그리고 담임선생님을 통해서까지 전방위적으로 제게 지우라고 강요를 했을까요? 그 생각에 저는 화가 났지만 처음에는 단순히 ‘낙서를 한 행위’가 잘못되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역시나 내용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제 낙서가 ‘정치적 프로파간다’이고 ‘위험’했기 때문에 지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죄 없는 담임선생님께 따졌죠.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했어야 하냐고, 그냥 가만히 있었어야 했냐고. 그러자 담임선생님께서는 공식적으로 항의 서한을 보내든지 그런 방법으로 해야지 낙서는 잘못된 방법이라고 말을 흐리시는 것이었습니다. 공식적인 항의 서한? 정말 학교가 그런 걸 원했을까요? 그러면 학교가 불이익 보는 거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 정말 1인 시위를 했어야 할까요, 만약 1인 시위를 했다면 학교는 가만히 있었을까요? 그런 시위도 아니고 고작 낙서인데, 단순한 낙서일 뿐인데, 교육감은 한 번 방문하고 지금 없는데, 도대체 그깟 낙서가 뭐가 무서워서 이렇게 안달복달하면 지우라고 말하는 걸까요. 너무나 화가 나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그 날 저녁 하루 종일 펑펑 울었습니다. 그렇게 전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나요, 모른척하며, 무관심으로 살아가야만 하나요. 그런 분위기가 제게는 억압으로 느껴져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정도 일마저 용납하지 못하는데, 이 사회에 맞서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힘들 것인가 하는 생각에 괴로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별 것도 아닌 일이지만 학교와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마주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 일로 전 교장실에 불려갔고 징계는 면한 채 낙서를 지우게 되었죠. 이후 혼란과 방황 속에서 제가 내린 결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에 사회문제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고, 분노할 때는 분노하되 옳다고 믿는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게 제 소박한 다짐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를 착취하는 삶을 살지 말고, 착취당하는 자, 혹은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했죠.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그 때 저는 중학교 시절 ‘옴부즈만’을 떠올렸어요. 비록 어렸을 적 멋모르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사회에 눈 뜬 이후, 사회에 대해 외면하지 말자고 다짐한 이후 저는 그 길을 다시 걷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인권운동’을 제 꿈으로 삼았고 인권단체를 검색하다가 ‘인권운동사랑방’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단체와 달리 자원활동가를 구하고 있었기에 메일을 보냈고 미류님의 사랑방 활동소개를 받고서는 사회권 팀에서 활동하기로 했지요. 앞으로 사랑방 활동을 하면서 인권이 무엇인지, 인간다운 삶과 사회란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현장 속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권리 개선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아직은 인권이라는 개념을 모호하게 알고 있고 많은 부분에 미숙하지만, 사랑방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고 싶어요. 모두들 잘 부탁드립니다. 대학교 생활도 새롭게 시작되지만 사랑방 활동에 소홀해지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그럼 저의 시시콜콜한 방황의 이야기도 마무리 지을게요. 안녕히 계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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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사람을 만나다 - 은진(상임활동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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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꿈이 자주 바뀌었다. 아주 어렸을 때, 6살 아니 5살 때부터 너무 자주 바꿔 다 기억 조차 나지 않는다. 계속 변하기만 하는 내 꿈을 들어주던 어머니도 어느 순간 짜증을 낼 정도였다. 그 수많은 꿈들의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어릴 적 표현으로 의하면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서였고 지금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어떤 직업이던 간에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상했다. 내 꿈을 (그 어떤 것이든) 들은 부모님, 선생님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 였다. 문제는 그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이었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제시한 '훌륭한 사람'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친구를 짓밟고 올라가야 가능했다. "XX는 새벽 두 시까지 공부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못해!(중 1담임)", "왜 너는 OO 보다 성적이 안 나오는 거니?(중 2 담임)" 담임은 성적을 가지고 친구들을 이간질시키기 일쑤였고 나를 이유 없이 미워하거나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친구가 생기기도 했다. 대학에 오면 좀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입시학원이 되어버린 학교는 한 강의에 200여명의 학생을 몰아넣고 여전히 나를 숨막히게 했다. 강의실에서 나는 하나의 예비 상품에 불과했다. 내 존재는 희미해졌다. 친구들은 스펙을 쌓거나 고시를 준비하기 바빴고 나는 그 어느 것에도 적응할 수 없었다. 나는 지쳐갔다. 대학교 1학년 시절, 돌아온 거는 사회공포증이었다. (우울한 얘기지만) 죽음을 꿈꿨다. 정말 죽으려고 한 적도 있다. 삶에 대한 애착이 없었다. 희망이 없었다. 상임활동가로서 입방절차를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새로운 시작과 나의 부족함으로 걱정도 되고 긴장도 되었다.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날카로움으로 한껏 예민해 있을 때, 우연히 사랑방 선배와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때까지 몇 번밖에 못 만났던 사이였기에 어려워 쭈뼛쭈뼛하고 있는데 상임을 지원했다는 소식에 그 선배가 한마디 했다. " 참 귀하다."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모든 긴장과 고민이 그 한마디에 녹는 듯 했다. 내가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스펙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그는 단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았다. 사람을 사람으로 만나주었다. 스물일곱, 이제까지 내가 원했던 건 아주 단순했던 거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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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님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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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님은 이주인권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주말에도 이주노동자들과 만나느라 쉴 수 없지요. 하지만 자신을 가꾼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아주 매력적인 분입니다. 주변과 소통을 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게 바로 자신을 가꾸는 일이라는 걸 아는, 보기에도 참 매력적인 분입니다. 작년 청계광장에서 열린 인권영화제를 보러 오셨을 때, 펄럭이는 치맛자락 옆 양손에 영화제 자원활동가들의 허기를 달래줄 맛난 음식을 가져 오셨던 기억이 나네요. 초록색을 좋아하는 초록이님의 후원으로 사랑방도 더 힘차게 돋아날거라는 자신이 생깁니다. 전화상의 인터뷰였지만 정말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정리 : 일숙(상임활동가)
◇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은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요? 그냥 하고 싶었어요. 저도 이주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이지만 사랑방이 하고 있는 활동은 참 꼭 필요한 활동이지만 어려운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악한 조건에서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국가권력으로부터 인권을 지켜내는 인권활동이 각 분야에서 많기는 하지만 경찰폭력 등 공권력감시는 좀 굳은 신념이 없으면 쉽지 않잖아요. 다른 NGO 들이 많이 못하는 일을 잘하고 있어서. 무엇보다 대표가 없고 수평적인 조직이라는 얘기를 아는 지인으로부터 듣고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지금 활동가이지만 거기서 활동하고 싶은 느낌말이에요. 사랑방 내부 시스템이 건강하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대부분의 단체가 수직적인데 그렇지 않다는 걸 듣고 부러웠어요. 더구나 밥도 해먹고. (밥 먹으러 오시라고 했는데 일하는 곳이 사랑방 사무실과 멀어서 아쉽다고 했다.) 인간이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을 하지만 활동과정이나 방식도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사랑방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는 지인으로부터 깊은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어 알게 된 사실인데,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고 재정을 유지한다고 알고 있어요.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많은 단체들이 지향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어서 독립적인 재정확보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 지금 하시는 일이 이주인권운동인데, 사랑방은 이주인권운동을 특정 사안이 있을 때만 하고 있어서 조금 아쉬운 적은 없었나요? 사랑방이 모든 부분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관심 가지면 좋겠지만. 그리고 멀지 않은 시기에 사랑방도 같이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주인권운동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랑방과 이주단체들과 함께 하는 기회도 있으면 좋겠고.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 인권오름 등 사랑방이 내는 매체가 있는데 좀 보세요? 사실 가끔 제목만 읽고 관심 가는 기사만 읽어요. 잘 안 읽지만 매주 정기적으로 발행한다는 거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했어요. 지면을 채우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인권오름 필진 중에 아는 사람이 있어 눈이 갈 때가 많아요. ◇ 그 외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사랑방이 하는 주도적으로 하는 인권운동의 연대공간이 기억이 남아요. 매년 한 번씩 참가하고 있는 인권활동가대회 같은 자리에서 서로 만날 때 참 좋아요. 이주인권단체들끼리 만날 때와 감성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운동하면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노동운동이나 환경운동 등 다들 자기만의 독특한 감수성이 있지만 인권단체들이 갖는 감수성은 덜 다듬어져 있다고 봐요. 만나면서 인권감수성을 높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냥 지나치면 놓칠 수 있는 소소한 사건들과 이야기들에서 감수성을 나누는 게 좋았어요. 인권중심적 환경, 분위기가 특히 좋았어요. ◇ 이주단체라 일요일에도 일한다고 들었는데 어려움은 없으세요?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요. 집안에서도 내놓은 지 오래고. 결혼식 못 간지도 9년이 된 거 같아요. 지금은 일요일 개념이 없어요. 지인들과 엠티를 가도 새벽에 와야 하고, 집에서도 나 때문인지 집안행사를 잘 안 잡아요. 불편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을 만나야 하니까 마음을 접었어요. 그래도 아쉬운 것은 일요일에 발이 묶여 있어 다른 이주단체가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는 모습을 돌아볼 수 없는 것. 생동감 있는 현장을 볼 수 없으니까.... ◇ 꼭 하고 싶은 휴식은? 쉴 때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이에요? ◎ 좀 1박2일 어디로 가고 싶어요. 연이어 쉬어본적이 없어 쉰다는 느낌이 없지요. 하루를 늘어지게 자고 그다음은 어디 놀러가는 그런 연휴를 즐기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타이밍이 아직 안 만들어져 아쉽네요. 지금 일하는 곳이 서울시에서 위탁받은 곳이라 행정적인 업무가 많아요. 서류더미에 산 달까.. 그래도 영화를 좋아해서 쉴 때는 영화를 봐요. ◇ 추천할 만한 영화는? 최근 이주노동자영화제에서 <곰 세마리>라는 이주여성이 직접 만든 짧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좋았어요.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귀엽고 어눌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결혼한 이주여성이 직접 살아가는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에요. 완성도가 높지 않았지만 이주결혼여성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였어요. 자신들이 만든 영화라서 그런지, 잘 만들어진 영화보다 교감이 높아요. 그리고 미누씨가 만든 영상 <대한민국2%>라는 것은 단체 자원활동가 교육 자료로 쓰고 있어요. 7~8분짜리 영상인데 미누씨의 눈으로 만든 영화에요. 한국인이 본 이주민에 대한 생각과 다르다는 걸 알수 있지요.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가 중요하고, 그게 공감의 기본이 아닐까요. 이주노동자방송도 관심이 많아 거기도 후원하고 있어요. 재미있는 영화란 마음의 재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영화를 많이 알리려고 해요. 그래서 인권영화제도 좋아하고. ◇ 제가 알기론 인권영화제도 후원하신다고 들었는데,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은데? (쑥스러운 웃음소리를 내며) 별 소리를 다 하세요. 활동비가 아주 적지 않으니까 후원하는 것뿐이에요. 활동가들이 자기 활동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해요. 내가 일하고 있으니까 용산이 어찌되든 말든이라는, 그런 방식의 운동은 무인도에서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마음 쓰기는 돈이나 시간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내가 지금 이 활동을 하지만 다른 곳에서 저 활동을 하고 있다면 함께 할 수 있다는 마음..그게 중요하지요. 인권영화제도 그런 마음으로 후원해요. 영화제가 열리면, 그 기간 중 일요일 빼고(일요일은 일하니까^^) 나머지는 휴가내서 꼭 보러 가지요. 휴식이 되기도 하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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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닥깔개 공사+봄맞이 대청소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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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류 안식을 찾아 잠시 떠났어요~ 사랑방은 1년 동안 2주의 안식주 기간을 보장하고 있어요. 그러나 터지는 현안들과 밀려드는 일들로부터 2주의 안식주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안식주에도 사무실 한 켠에 자리했던 미류 활동가가 이번 안식주에는 제대로 재충전하고 오기 위해 서울을 떠났습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충분히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길, 그래서 맘도 몸도 더 튼튼해져서 오길 바랍니다. 2. 박래군 활동가 공판 열려 지난 3월 29일 오랜만에 박래군 활동가와 공동집행위원장인 이종회의 공판이 열렸습니다. 첫 심리 때 많은 방청객이 있어 큰 재판정을 구하고, 그 기간에 판사도 바뀌어서 오랜 시간이 걸렸답니다. 물론 큰 재판정은 결국 못 구했구요. 변호인단은 검찰이 주장한 공모주도혐의에 대해 증인 신청을 하였고, 다음 재판 때 증인 심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봄이 다 가기 전에 구치소에서 나와 함께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음지에 있던 성(性)을 양지로 이끌어내면서 성을 둘러싼 억압과 권력, 또 즐거움과 설렘을 함께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사랑방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 삶에서 성적인 것이라면, 결혼, 연애, 미팅/소개팅 등과 같은 만남 외에도 패션, 드라마, 영화, 노래, 소설 등 너무너무 많지요. 각자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을 것 같네요~ㅎㅎ 6월과 11월에 있을 기본 반성폭력교육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들을 해볼 수 있을 것 같고요. 물론 '성폭력',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과 관련한 고민도 함께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7기 반성폭력위원회는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1달에 1번 정기회의를 통해 이런저런 논의를 할 예정이에요. 참, 안타깝게도 올해 함께 7기 반성폭력위원회를 책임지기로 했던 유리씨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돋움활동을 휴직하게 되면서 올해 반성폭력위원은 호연, 석진 두 명만 하게될 것 같습니다. 1. 홈리스 분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위해 홈리스 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우선 3월 25일에 노숙인 인권 실천단 분들과 함께 종각 지역의 홈리스 분들을 만났습니다. 두 시간 가량 홈리스 분들을 만나며 우리가 인터뷰를 통해 나누게 될 이야기의 감을 조금 더 잡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노숙인 인권실천단 분들은 매주 노숙인 지원 사업을 나가는데 저희도 매번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는대로 같이 하면 좋겠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한편 이 날 만난 홈리스 분들을 통해 최근 경찰이 노숙인을 주 대상으로 불심검문을 강화하면서 불법적인 모습들이 보인다고 하여 대응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올해 새로운 자원활동가들이 많아 사회권의 여러 권리영역이 드러나는 부분을 함께 하기로 하였답니다. 그 중에서 청소비정규노동의 문제를 다룬 따뜻한 밥한 끼의 권리캠페인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밥에 대한 권리조차 박탈되어 찬 도시락을 좋은 창고에서 먹어야 하는 청소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권, 노동권, 쉴 권리를 다룬 캠페인입니다. 최근 노동조합이 생긴 신촌 기차역에서 캠페인을 한 후, 많은 언론에서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갔어요. 그 후로 대표적으로 휴게공간이 나빴던 사업장은 휴게공간 공사를 시작했다니 정말 다행이지요. 그리고 사회권팀 활동가들은 공공노조와 함께 이화여대 현장순회에 함께 했어요. 7시부터 근무가 시작이라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6시 20분이면 출근하지요. 그래서 활동가들도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 현장을 함께 둘러보았답니다. 실제로 돌아보니 단순히 식대나 휴게공간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저임금, 노동시간 부족과 사람 부족으로 노동 강도가 매우 강했습니다. 지금은 회사와 임금 및 단체협상 교섭을 시작하고 있어 캠페인이 많은 힘이 되길 청소노동자들이 바라고 있지요.
2. 청소노동과 관련된 세미나 진행 청소노동 활동과 관련된 권리문제, 인권문제를 세미나하면서 청소노동을 가시화하는 내용을 풍부히 하기로 하였습니다. ‘왜 청소노동을 천대받을까? 청소란 꼭 필요한 일인데도 낮게 평가받으며 저임금인 이유는 뭘까? 청소노동자들 중 여성이 많은 이유는 뭘까? 여성노동자들이 노동과정에서 남성들과 다른 대우나 노동과정을 겪는 이유는 뭘까? 고령의 여성들이 청소노동을 택하는 이유는 뭘까?’ 이러한 의문을 푸는 과정이 세미나가 될 거에요. ‘노동의 위계, 젠더, 나이와 차별’등의 문제를 다루는 세미나를 진행하려는데 찾은 논문만 60여개에 달한답니다. 3. 2007년 청소 노동 관련 인권위 권고사항 정보공개 청구 2006년 공공부문 청소노동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후 인권위에서는 민간부문보다 공공부문이 더 열악한 처우를 받는다는 것을 파악하고 몇 개의 권고를 노동부,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에 하였답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후속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 주거권운동네트워크 4. 주거권운동네트워크가 참여한 “주거권, 가족정책 그리고 계급”포럼 지난 3월 23일, 상상연구소와 주거권운동네트워크가 공동주최하고 가족구성권연구모임이 주관하여 “주거권, 가족정책 그리고 계급”이라는 주제로 제3차 가족정책포럼이 열렸습니다. 이번 포럼에서는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씨가 “한국사회의 부동산과 계급 재생산”이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발제를 하고, 인권운동사랑방과 주거권운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호연 활동가가 “소수자의 주거권과 가족”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습니다. 포럼 참여자들은 한국사회에서 부동산을 통해 계급재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조건을 이야기하면서 고민을 나누었고, 이러한 조건 속에서 배제되고 있는 소수자의 주거권을 가족구성권의 입장에서 논의하였습니다. 향후 주거권운동네트워크와 가족구성권연구모임은 함께 주거권에 대해 고민하면서 연대활동을 만들어나가기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5. 진보복덕방 22호 나왔어요. 진보복덕방 22호는 “주거권의 관점에서 본 재난 관련 정책의 현황과 과제”라는 제목으로 주거권관점에서 재난의 문제를 다루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공부합시다’에서는 서울시가 지난 2월 1일 발표한 재개발구역 세입자를 위한 ‘순환용 임대주택’ 공급계획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주거다반사’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 만들기’라는 부제가 있는, 공존을 위한 공공문화 표현집단 <퍼포먼스 반지하>의 활동가 정정석씨의 “창영동 젊은이들의 마을 살이” 연재를 시작하였습니다.
◎ 성북대안개발프로젝트 6. 봄을 맞아 ‘마을소식지’답게 개편했어요~ 그동안 ‘장수마을(삼선4구역)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소식지를 부정기적으로 발간해왔는데요, 주로 대안개발모임의 이야기를 전하고 일정 등을 홍보하는 것 위주였습니다. 대안개발 관련 내용뿐 아니라 다양한 동네 이야기, 주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도 담고, 여러 가지 복지정책이나 문화행사도 소개하면서 재밌고 알찬, 그래서 주민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장수마을의 소식지’가 되도록 개편하기로 했어요. 매달 초마다 정기적으로 발간하여 마을의 소식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기로 했구요.~ 그래서 두둥! 새로워진 <장수마을 이야기> 4월호가 나왔습니다. 이번 호에는 새롭게 개편된 소식지의 꼭지 소개 및 문상분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옛날이야기 등이 들어있습니다. <장수마을 이야기>는 장수마을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풍성해질 <장수마을 소식지>를 기대해주세요.
7. 장수마을에 작은미술관295가 생깁니다~ 대안개발모임에 함께 하고 있는 공공미술가 김지혜씨의 기획으로 장수마을에 작고 소박한 동네 미술관이 만들어 집니다. 295-18번지 빈집 앞 공터에 세워져서 작은미술관295라고 부르고 있어요. 작은미술관295가 정든 이웃과 함께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이야기 나누는 소통의 장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장수마을 소식지 지금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데요, 서울성곽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이 구경을 오고 있습니다. 4월 11일 일요일 오후 3시, 작은미술관295 오프닝 행사를 합니다. 장수마을, 그리고 장수마을 주민들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오브제들이 전시될 예정이에요. 정든 이웃과 함께 살 수 있는 동네에 대한 바람을 담은 소원나무 만들기도 진행됩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니 놀러오세요~^^
8. 장수마을 주민들 현장상담을 진행합니다~ 작은미술관295가 문을 여는 날인 4월 11일 일요일 오후 1시부터 근처 주차장 공터에서 현장상담을 진행합니다. “기초생활수급권이란 게 있다던데 받을 수 있는 건가?”, “이사를 하고 싶은데 비용이 걱정, 방법이 없을까?”, “노인생계비 지원 같은 거가 있다던데...”, “파산으로 하루하루가 걱정인데 어떡해야 하나?” 등등 주거복지, 사회복지와 관련해서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을 풀고 지원 방법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이런 자리들을 통해 장수마을 주민들의 어깨가 조금 가벼워지면 좋겠습니다. 1. 광장허가내용 정보공개청구 이의신청 지난 3월 12일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청계광장 사용 허가 내역에 관한 정보공개청구를 하였습니다. 모두의 공간이어야 하는 광장을 서울시가 어떤 식으로 운영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청구였습니다. 서울시는 세 광장에 대해서 정보공개결정통지를 하였으나, 원래 정보공개 청구한 내용에서 대부분을 공개하지 않는 반쪽짜리 정보공개였습니다. 곧바로 인권영화제는 정당한 이유 없이 부분 공개한 것에 대해 각 광장 사용 허가 단체와 허가 승인 내용을 빠짐없이 모두 공개하도록 이의신청을 했습니다. 2. 14회 인권영화제 장소, 막판 진통 장소를 물색 중입니다. 현재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을 유력한 후보지로 정하고, 현장 관리 담당자와 조율하고 있습니다. 공원도 저녁 6시 이후에는 사용할 수 없다하여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인권영화제의 의지와 대중사업을 위해 끝까지 파이팅!입니다. 3. 작품 선정 할 때마다 안타까워요 14회 인권영화제에 상영될 국내작 7편을 선정하였습니다. 올해도 인권의 현장을 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감독들의 작품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추후 결정되는 장소와 행사 일시에 따라 추가로 15주년 특별 기획전과 해외작 선정을 끝마칠 예정입니다. 상영공간만 더 확보할 수 있다면 좋은 작품들을 더 많이 상영할 수 있을 텐데요. 안타깝지만 더 좋은 나날을 만들기 위해 힘내야죠. 1. 인권이야기 새 필자가 독자들을 만납니다 인권이야기 필자가 4월 7일부터 새롭게 독자들과 만납니다. 새로이 글을 써주실 분들은 여미숙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 김현 (풀뿌리연구소 이음 연구원), 김옥자(「갈라진시대의기쁜소식」 편집인), 안태호 (예술과 도시 사회연구소 연구원)입니다. 2. [나들터] 싱싱고고 호외편을 꼭 보세요 나들터 싱싱고고 호외편이 4월2일 발행되었습니다. 작가 고달이 씨는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 고 박지연 씨의 삶을 만화로 담았습니다. 가슴 뭉클, 눈물 핑글, 우리 시대 여성노동자의 삶이 그려졌습니다. 꼭 보세요.~ 1. 야간 집회 금지법안 항의 캠페인 중 지난 달에 이어, 조진형 의원의 야간집회 금지법안에 대응하여 항의 엽서 보내기 캠페인을 진행 중입니다. 서울역, 명동, 대학로 등지에서 시민들에게 야간집회금지법의 부당함을 알리고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야간집회 금지를 철회하도록 항의하는 엽서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00명이 넘는 분들이 엽서 보내기에 동참해주셨습니다. 야간집회금지법 반대 엽서보내기 행동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2. 헌법재판소, 형법 상 일반교통방해죄 합헌 판결 헌법재판소가 형법 상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형법 상 일반교통방해죄란 도로나 철로를 손괴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교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에 적용되는 죄로서 최고 10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무거운 죄인데요, 경찰은 이를 단순 집회 참가자들에게 적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교통 체계에 치명적인 위험을 야기하는 경우에나 적용될만한 법조항을 단순히 도로에서 시위했다는 이유로 적용하는 현실엔 눈을 감고 법리적인 해석에 갇힌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헌법재판소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인권단체들도 이에 대해 비판하는 성명을 냈는데요, 이제 줄줄이 이어질 촛불들에 대한 재판에서 각급 법원들이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도록 똑바로 감시하고 대응해야겠습니다. 3. 한국의 표현의 자유 실태를 조사, 기록 중 유엔 표현의 자유특별보고관 공식 방한을 앞두고 대응활동이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3월 17일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사무실로 한국의 표현의 자유 실태 요약 보고서를 제출했고, 현재는 본보고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고서 작성을 통해 이명박 정부 2년 동안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침해되었는지를 객관적인 자료를 수치화해서 보여줄 예정입니다. 보고서에는 총론, 사상·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직장에서의 표현의 자유, 사이버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 알권리 및 접근권, 감옥에서 표현의 자유, 국가인권위 독립성 후퇴와 표현의 자유, 성소수자와 표현의 자유, 청소년과 표현의 자유 등이 포함됩니다. 1. 신입활동가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은진 신입활동가 입방으로 활동가 기본교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은진 활동가가 영화제에 배치된 만큼 상반기에 교육 일정을 다 진행하기는 무리가 있어 글쓰기, 이론 교육은 영화제 이후로 미뤘습니다. 자유권, 사회권, 반차별 교육은 자원활동가들도 함께 참여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유권 교육 때는 포르노그라피 논쟁이 치열하고 재밌게 진행되었다는 후일담이, 사회권 교육 때는 인권의 역사를 쭉 훑으면서 재산권을 어떻게 봐야 할지, 사회권의 사법적 구제를 어떻게 봐야 할지 등 심도 있는 이야기들이 오갔다는 후일담이 있었습니다. 4/5 진행될 반차별 교육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지 기대됩니다. ^^ 2. 2010년 정책조직팀 활동 계획을 세웠어요~ 작년 평가에서 아쉬움으로 얘기된 정책 활동을 채워나가기 위한 기본적 토대로 꾸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면서 인권현안을 정리, 재구성해나가기로 했습니다. 2010년 정책조직팀 활동의 가장 큰 목표는 “기본에 충실하자”라고나 할까요? ^^: 각각의 팀에서 맡은 수임으로 일상적인 모니터링이 버겁긴 하지만 꾸준히, 진득하니 해나가면서, 정세를 읽고 인권운동의 입장을 벼릴 수 있는 시야가 확보되길 바래봅니다. ◎ 인권단체연석회의 1. 3월 22일 사후 처벌 남발 대신 아동․여성 인권 보장체계 마련 촉구 기자회견 개최 아동성폭력 방지책으로 나온 정부 정책이 인권후퇴를 불러올 것을 우려하며 인권단체연석회의(아래 인권회의)는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와 함께 3월 22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인권회의는 정부가 내놓고 있는 사형제 재개, 전자발찌 확대, 보호감호제 부활 등으로는 아동·여성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이들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인권단체들은 가해자 중심의 처벌강화 논리가 판을 치면서 정작 어린이와 여성 등의 인권을 증진시키고 성범죄 예방을 위한 정책 수립 및 교육,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지원 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주목하면서, 아동여성인권보장정책에 정부가 보다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자회견문은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 한편, 3월 24일 인권회의는 종교단체들과 함께 정부의 사형집행 재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기자회견문은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 2. 삼성 반도체 노동자 박지연님 사망, 인권회의 추모 및 항의 활동 진행 2010년 3월 31일, 23세의 나이로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 박지연님이 생을 마감했습니다. 현재 삼상반도체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들은 알려진 것만 해도 고 황유미님을 비롯하여 9분이 돌아가셨고 22분이 현재 투병중임에도 삼성은 지금까지 업무와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희생자들을 회유 및 협박하고 있습니다. 4월 2일 인권단체연석회의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도체’와 함께 삼성 본관 앞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고 박지연님의 죽음의 배후에는 삼성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지연님이 안치된 서울성모병원과 강남 삼성본관까지 추모행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2시 30분경 추모자들 7명을 연행했고, 서초경찰서로 이송했습니다. 인권회의는 4월3일 서초경찰서 앞에서 규탄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3. 인권회의에 새로운 단체 가임야간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이 새로이 인권단체연석회의에 가입했습니다. 노동인권에 대한 관심과 역량이 생길 것으로 기대합니다. ◎ 인권위 공동행동 4. 인권위 공동행동 2009년 평가워크숍 열어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인권시민단체들이 모여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이라는 걸 만들어서 활동한지 한해가 지났어요. 그래서 그동안 무엇을 했고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평가하는 자리를 가졌어요. 무자격자 현병철 위원장 사퇴운동부터 인권추락상까지, 참 많은 일을 했더라구요. 대부분 현안대응이 많아 힘들었지만 적절했다고 했어요. 인권위가 아니 인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인권의 당사자들과 함께 한 ‘일제고사 학생인권침해 집단진정’, 인권위 결정례를 분석한 일도 좋았다는 평가를 했어요. 하지만 부족했던 수도권 중심의 활동들을 메우자는 이야기가 오갔답니다. 5. 2010년 사업방향 잡고, 팀도 재편하기로 3월 11일 평가워크숍의 내용을 바탕으로 2010년 사업 방향이 잡혔답니다. 올해는 작년처럼 긴급한 현안이 많지 않아 보이기도 하고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무자격자 인권위원들이 많은 현실이라 인권위 활동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기로 하였답니다. 그리고 적절한 인물을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식의 시민사회 공론화를 거쳐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인선절차 개선안에 대해서도 준비하기로 하였답니다. 그래서 작년에 있던 담론대응팀은 정책팀으로 하여 지속적인 모니터링활동을 하고, 기획투쟁팀과 현안대응팀을 합쳐 현안팀으로 개칭하여 현병철 임명 1주년 평가 작업을 하기로 했어요. ◎ 반차별공동행동 지난 '차별금지법 상상더하기 포럼' 이후 후속 대응 활동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반차별공동행동은 올해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활동을 큰 활동의 주제로 삼고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차별금지법을 화두로 차별과 관련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요. 더 많은 차별 피해당사자들을 그 과정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이라는 추상적으로 보이는 담론을 구체적인 현실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차별이라는 경험은 매우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고 매우 구체적인데, 그게 대부분 파편적으로 자신만의 경험에 한정되는 것 같아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지점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 차별금지법을 통해 이야기하다 보면 차별 경험들 속에서 일반화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도 함께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올해 반차별공동행동은 차별금지법 대응 활동을 좀 잘 해보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침 법무부가 올해 차별금지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해요. 이번에는 정말로 차별을 금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법안을 놓고 사회적 합의를 모아볼 수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지난 1월 20일, 인권운동사랑방은 천주교인권위원회와 공동 명의로 <국가인권위의 ‘북한인권’ 정책, 뉴라이트의 앵무새가 되었나 - 인권위 북한정치범수용소 실태조사 보고서의 문제점>이라는 논평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번 논평은 국가인권위원회가 1월 20일에 발표한 '북한 정치범수용소 실태조사 보고서'가 ▶실제 포함된 내용과 다른 제목으로 선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고 있고, ▶2002년, 2003년에 이미 발표된 내용들과 다를 게 없으며, ▶국가기관이 책임질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어, ▶결국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북한인권의 강화를 당부 받은 현병철 위원장, 인권을 무시한 파행만을 거듭하는 현병철 위원장이 보이는 반(反)인권적인 행보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논평은 인권운동사랑방 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또, 북인권모니터링팀에서는 1월 20일, 한반도인권 뉴스레터 17호 <'정치범수용소'와 '공개처형' 문제를 둘러싼 북한인권 ① - 북한인권, 선정성을 넘어 대안적 담론으로>를 발행하였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북한에 대한 대표적인 인권침해라고 지적되는 정치범수용소나 공개처형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확인해야할 전제들을 확인하였습니다. 특히 17호 뉴스레터에서는 '정치범수용소' 문제가 다루어지는 정치적 흐름과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정보들의 제한점들을 설명하였습니다. 이번 뉴스레터 전문은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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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에는 ‘내 인생의 연예인’을 아그대다그대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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