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인권위, 북한 인권개선 촉구 결의안 채택

(제네바=연합뉴스) 오재석 특파원=제59차 유엔인권위원회는 16일 오후(한국시간 16일 밤) 북한 인권침해 상황을 규탄하고 개선노력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인권위가 북한결의안을 채택하기는 지난 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유엔인권위는 이날 유럽연합(EU)가 제안한 북한결의안을 상정해 53개 위원국이 참석한 가운데 표결에 부쳐 찬성 28, 반대 10, 기권 10표로 통과시켰다. 한국은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투표에 불참했다. 북한결의안 채택에 반대한 국가는 알제리, 중국, 쿠바, 리비아, 말레이시아, 러시아, 수단, 시리아, 베트남, 짐바브웨 등이다.

인권위의 결의안 채택으로 북한 인권상황은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을 비롯한 유엔인권기구의 지속적인 감독을 받게 되며 인권위의 상시 의제로 국제적인 관심과 압력의 대상으로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결의안은 식량분배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유엔 산하기구 등 국제 인도지원 단체들의 북한내 모든 지역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보장하고 탈북자들에 대한 처벌금지, 외국인 납치 문제의 투명한 해결 등을 촉구했다.

전문과 7개항의 본문으로 구성된 이 결의안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기준의 엄수와 고문방지협약과 인종차별철폐협약의 비준 촉구, 아동권리위원회와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 이행, 여성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지속적인 침해에 관한 우려 등을 표명했다.

결의안은 이어 내년의 제60차 유엔인권위에서 북한 인권상황을 똑같은 의제에서 우선적인 사안으로 계속 다루도록 결정하고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에 새롭게 발견된 내용과 권고사항을 보고하도록 요청했다.

북한은 투표에 앞서 발언을 통해 "EU는 우리와의 인권대화와 협력을 배신했다"고 비난하면서 "만일 이번 결의안이 강행돼 채택된다면 인권분야에서 EU와의 협력은 물론 유엔인권에 관한 위원회에서 우리의 정상적인 활동이 장애에 부딪칠 수 있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엔인권위의 북한결의안 투표 분석>

제59차 유엔인권위원회에 사상 최초로 상정된 북한결의안의 표결을 앞두고 회의장 주변에서는 한국의 불참 결정이 결의안 통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 우려는 결국 기우에 그쳤음이 입증됐다.

쿠바가 결의안 반대 입장을 표시하면서 표결에 회부할 것을 요청하고 비동맹진영의 좌장인 중국이 결의안 상정 및 채택의 부당성을 지적한 뒤 시리아가 이에 동조하는 형식으로 반대 분위기를 유도했다.

그러나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쿠바, 중국, 시리아를 비롯해 알제리, 리비아, 러시아, 수단, 베트남, 짐바브웨, 말레이시아 등 10개국에 불과했다. 반면 아르헨티나, 아르메니아, 호주, 오스트리아, 벨기에, 캐나다, 칠레, 코스타리카, 크로아티아, 프랑스, 독일, 과테말라, 아일랜드, 일본, 케냐, 멕시코, 파라과이, 페루,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스웨덴, 우크라이나, 영국,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은 EU와 미국이 주도한 찬성진영에 가담했다.

이날 기권표를 던진 14개국이 반대표로 전환했을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결의안은 찬.반이 28대24로 무난히 통과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기권국은 바레인, 부르키나 파소, 카메룬, 콩고, 인도, 파키스탄, 세네갈, 시에라리온,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리랑카, 스와질랜드, 태국, 토고, 우간다 등이다.

한가지 주목할 대목은 투표권이 부여된 53개 위원국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EU가 제안한 북한결의안에 지지의사를 표시한 공동제안국에 옛 동구권과 독립국가연합 소속 국가들이 대거 포함됐다는 점이다. 불가리아, 체코, 에스토니아, 헝가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은 북한결의안 채택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유엔인권위, 북한결의안 채택 이모저모>

(제네바=연합뉴스) 오재석 특파원=제59차 유엔인권위원회는 16일 오후(한국시간 16일 밤) 본회의를 속개해 북한결의안을 최초로 상정, 표결로 채택하는데 25분 가량이 소요됐으나 서방과 비동맹진영간의 치열한 공방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날 북한결의안 처리는 먼저 유럽연합(EU) 의장국인 그리스가 제안설명을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리스는 지난해 58차 유엔인권위에서 EU가 북한의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에 우려를 표명한 점을 상기하면서 "국제기구와 인도지원 단체들이 북한에 대한 국제원조를 제공하는데 접근문제와 근무여건 등으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식량 등 인도적 지원의 분배 투명성 제고에 우선적인 비중을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쿠바는 북한 결의안이 "부당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시하면서 표결로 채택여부를 결정할 것을 제의했다.

북한의 최대 우방인 중국은 북한결의안 상정 및 채택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반대표를 행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중국은 유엔인권위가 국별 결의안을 채택하는데 반대입장을 취해왔다는 점을 강조한 뒤 북한결의안 채택은 "인권증진과 개선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비생산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EU의 결의안 상정은 "인권 보다는 한반도 상황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북한이 4대 협약에 가입해 당사국으로서 이행보고서를 제출하고 EU와 인권대화에 임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어 당사국인 북한은 정성일 외무성 군축.인권담당 과장의 발언을 통해 "결의안을 전면적으로 배격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북한은 EU의 결의안 제출은 "한마디로 상정 경위와 내용에 있어서 인권과는 무관한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며 "EU는 우리와의 인권대화와 협력을 배신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EU가 활성기에 있는 우리와의 대화와 협력을 집어 던지고 갑작스럽게 대화 일방인 우리와는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이번 회의에 결의안을 상정한 것은 환멸만을 자아낼 뿐이다"며 "특히 우리를 가장 격분케 하는 것은 EU가 결의안에서 우리나라의 인권상황을 과장하다 못해 우리가 마치 국제사회와 담을 쌓고 있는 듯이 사실을 오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수천수만의 민간인들이 살해되는 대규모 참사에 등을 돌려대는 EU의 처사야 말로 그들이 떠드는 인권옹호란 한갖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고 `이중잣대' 적용을 지적했다.

특히 북한은 "EU가 우리와 대화와 협력을 전격적으로 차단하고 대결을 선포한 이상 우리의 응당한 권리는 그에 상응한 대응책을 취하는 것"이라며 결의안이 채택될 경우 "인권분야에서 EU와의 협력은 물론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우리의 정상적인 활동이 장애에 부딪칠 수 있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맞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편 북측 관계자들은 한국 정부가 투표 불참을 결정한데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한데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