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가의 편지] 영화 <지슬>, 지금 우리의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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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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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슬>을 보고나서 한동안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뭘 해도 무력감을 느꼈고 때로는 우울했고 무서웠다. <지슬> 몇몇 장면이 내 머리 속에서 반복해서 떠올랐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 계속 나를 일깨우는 그런 느낌. 특히 알 수 없는 한기와 배고픔, 살기가 피부 ‘감각으로’ 느껴질 때, ‘추체험이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혼자 감탄사까지 나왔다. 가령, 영화 속 장면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아도 그 아픈 느낌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없기에 그냥 영화 속 장면에 불과한데, 영화 <지슬>에서 느껴지는 한기와 배고픔, 살기는 나에게 실재하는 감각으로 다가왔다. 영화 <지슬>은 시와 사진의 언어이다
<지슬>은 명령을 따르고 따라야만 했던 군인, 군 시스템이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국가폭력 앞에서 주민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떻게 살아남고 사라져갔는지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국가폭력이라는 것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농사를 짓고, 자식처럼 돼지를 키우는 사람들, 아이 낳고 부모를 부양하는 그냥 보통 사람-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 지도 드러난다. 영화 도입부부터 눈물이 흘러서 그냥 하염없이 울다가 후반부에서 뭔가 내 안의 결기 같은 것이 생겨났던 것 같다. 다리가 아파 함께 피난갈 수 없었던 할머니가 지슬(*제주도 방언으로 감자)을 품에 안고 죽어간다. 다시 어머니를 모시고 가려했던 아들은 어머니 품에 있던 지슬로 인해 생명을 이어간다. 내 안의 결기는 <지슬>을 품에 안고 죽어간 할머니를 보면서 생겨난 것 같다. 빨갱이가 대체 뭐길래…… <지슬>은 50년 전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현재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슬>을 품에 안고 죽기 전에 할머니와 군인이 대화를 나눈다. 군인은 할머니를 칼로 찌르고 나서 툇마루에 앉아있다. 칼에 찔린 할머니는 서서히 죽으면서 말한다. “나도 자네만한 아들이 있네.” 피범벅인 된 얼굴로 군인이 말한다. “내 어머니를 빨갱이가 죽였어요. 빨갱이는 다 죽여버릴 거에요.” 할머니는 슬픈 눈으로 군인을 바라보며 말한다. “빨갱이가 대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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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05월08일 10:58: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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